가족 얼마 전 열흘간 이란에 다녀왔다. 카즈빈 시와 세계시민기구(WCO)가 주최하는 <실크로드 시장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축전과 이슬람 성직자의 축도, 그리고 곽영훈 총재의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성대한 대회가 3일간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이 대회는 국가나 국제기구들이 해내기 어려운 다양한 민간적 차원의 교류를 도시와 시민들 간의 문화적 교환을 통해 이루어내려는 시도였다. 그것은 실크로드를 ‘새로운 지평’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의 한 방식이기도 했다.
공식 행사에 이어 여러 문화 행사가 열렸고 테헤란을 비롯하여 카산, 야즈드, 이스파한 등 유서 깊은 도시들을 방문하며 짧은 기간에 많은 문화체험을 한 셈이었다. 고궁과 사원, 박물관과 유적지, 공원과 사막, 시가지와 호텔 등을 거의 골고루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러한 풍광이나 풍물들과 함께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디를 가나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는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어린이를 거느린 젊은 핵가족부터 노부모와 손자들로 이루어진 대가족까지 어디에나 수많은 가족들이 사이좋게 모여 있었다. 공원에서는 서너 가족들이 한데 어울려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밤늦게까지 호텔의 분숫가에도 가족들이 즐겁게 모여 놀고 있었지만, 어린이들이 소란을 떨지는 않았다. 그러한 풍경은 당연한 것 같이 여길 수도 있지만 근엄하고 보수적인 나라라는 내 선입견 때문인지 흥미롭게 보였다.
나는 이란의 정치와 문화, 풍습이나 제도 등에 대해서 생소한 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을 유지하고 보존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면 일단 존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족은 어떤 문명권이나 문화형태에서든 항상 생존의 조건이었으며 삶의 거점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독신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혼율도 높아져서 이른바 ‘가정의 위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소중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왜 가정이 위기인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과학기술의 발달로 혼자 지내는 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현대를 풍미하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적 평등주의 인간관의 영향일 수 있다. 전자는 개인의 생물학적 주체성을 소중히 여기는 한편 후자는 사회의 유기체적 실체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회가 상상력의 소산인 것처럼 개인도 추상적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다만 특정한 담론의 영역에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서 가정은 어떤 의미에서 개인보다 더 구체적이고 사회보다 더 현실적이다. 그것은 생물학적이라기에는 너무나 사회적이고 사회적이라기에는 너무도 생물학적이어서 문화의 가장 원초적 단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이란 여행의 여독에서 풀려나지 못한 상태이다. 그곳에서 우리 ‘한류 드라마’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중에는 전통적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도 있지만, 가정이 파편화되는 막장 드라마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들이 외부의 영향에 너무 휩쓸리지 않고 산업화나 민주화의 속도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소중한 가정의 가치를 지켜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