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퇴고란/김병권

수미차 2009. 6. 26. 10:59
 퇴고의 어원은 중국 가도(賈島: 779-843)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중국 당나라 시대, 하북성(河北省)에서 출생하여 한 산사(山寺)에서 승려생활을 하고 있던 가도는 어느 날 노새를 타고 서울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마상(馬上)에서 지은 ?이응의 유거에 제함(李凝의 幽居에 題함)? 이라는 제목으로 지은 시의 맨 끝 연(聯)에 들어갈 시어(詩語)가 떠오르지 않아 골똘한 상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한거인병소 (閑居隣竝少) : 한가하게 사노라니 사귄 이웃 드물고
  초경입황원 (草徑入荒園) : 풀밭사이 오솔길은 거친 들로 뻗어있네
  조숙지변수 (鳥宿池邊樹) : 저녁 새는 연못가의 보금자리를 찾는데
  월하승고문 (月下僧敲門) : 달빛아래 스님은 문을 두드리고 있네

  이렇게 지어놓은 가도는 말련(末聯)에 월하승퇴문(月下僧堆文: 달빛아래 스님은 문을 미네) 이라고 하려다가, 아니야 문을 미는 것 보다는 두드린다는 표현이 더 운치가 있지, 라고 하며 월하승고문(月下僧敲門: 달빛아래 스님은 문을 두드리고 있네) 라고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면서 혼자 중얼중얼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노새는 어이없게도 맞은편에서 오던 부윤(府尹)의 행차와 맞부딪치게 되었다.
  이 때 어디선가 벽력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무례한 놈 같으니. 감히 부윤의 행차도 몰라보고 이 무슨 망동(妄動)인가!?

  경호원한테 호된 질책을 받으며 부윤 앞에 끌려 나간 가도는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여 죄송하다?고 정중하게 사과를 하였다. 이 때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부윤은 ?보아하니 먼 산만 바라보고 가는 것 같던데, 무슨 생각에 빠져 그렇게 노새를 방치하였는가?? 라고 물었다. 그러자 가도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초지종(自初至終)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부윤은 빙그레 웃으면서 ?월하승퇴문? 보다는 ?월하승고문?이 더 낫겠구먼.  달밤에 문을 밀고 들어간다는 것보다야 두드리며 들어간다고 대응하는 편이 훨씬 운치가 있지 않은가,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즉흥적으로 가도의 시작(詩作)에 일조를 해준 이는 바로 저 당송팔대가로 유명한 한퇴지(韓退之 : 768-823)였던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교유(交遊)하게 된 두 사람은 그 후 많은 명시를 남긴 문우가 되었으며, 가도는 그 덕분에 관직에도 나갈 수 있었다고 상소잡기(湘素雜記)는 전하고 있다.

  그리고 박목월의 시 ?나그네? 중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은 시우(詩友) 조지훈의 조언에 의한 퇴고 덕분에 한층 시적 분위기를 북돋게 되었다고 함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화라 하겠다.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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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삼/ 조지훈>

차가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 물길은 칠백리 /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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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시문(詩文에 대한 퇴고는, 작가 자신의 창작의지에 따라 첨삭(添削)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때로는 친지의 조언이나 주위 사물을 접하면서 느끼게 되는 새로운 착상에 영향 받을 수도 있음을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이다.

퇴고는 문장의 첨삭과 교체 등에 중점을 두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한다.

1) 주제의 통일성과 내용의 조화
2) 문맥의 흐름과 논리적 모순여부
3) 표현상의 품격 문제 : 속어나 은어 등은 과감히 배제하여야 한다.
4) 주체와 객체의 적정성
5) 문단의 적절성
6) 문제(文體)와 수사(修辭)의 적절성
7) 표현의 반복성 여부
8) 띄어쓰기와 문장부호 문제

  이상으로 퇴고에 관해 살펴보았는데, 여하튼 퇴고는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이다. 조각이나 미술품도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빛이 나듯이 글도 줄이고 다듬을수록 완성도 놓은 작품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와 끈기 있는 인내심으로 임하면 그 효과는 더 배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