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뽀와 눈
김 붕구 [69세로 타계. 서울문리대 불문과 교수역임. 수필집‘서울과 파리의 마로니에(1979년)’. 저서 ‘불문학 산고. 불문학사. 부들레르 연구’
겨울 밤 하면 내 평생에 가장 지겹도록 심란하고 우울하던 파리의 겨울밤이 우선 생각난다.
11월 중순께부터 하늘은 구름 덮인 채 개는 날이 없고, 이어 기나긴 장마철이 계속된다. 부슬부슬 가랑비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잠깐 멎었다간 다시 오곤 하는 것이다. 4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이 꼴이다. 보들레르가 아니라도 이역만리 객지의 홀아비 가슴은 이 파리의 우수에 흠뻑 젖어 버릴밖에 없다. 거기서 몇 해를 보낸 파리 체류의 선배들은 여기서 겨울을 배겨나려면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만날 때마다 충고를 해 준다. 과연 끼니마다 고기를 먹건만, 거리에 나서면 어찔어찔하고,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이 걸음걸이에 통 중력이 걸리지 않는 기분이다.
그들의 영양섭취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한국 사람들은 거개가 영락없이 영양실조로 쓰러질 것만 같다. ‘옳거니, 우리 백성들은 태양을 먹구 사는구나.’ 이런 확신을 얻은 것도 거기서 였다.
설상가상으로 도착 이래 나는 불면증에 걸리고 말았다. 파리와 서울과의 시간차 때문인지는 몰라도 매일 새벽 4시쯤에야 잠이 드는 것이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북불 지방 도시에 사는 내 아파트 주인 할머니에게서 편지가 왔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매달 한 번씩 다녀가던 그녀의 친지 S양이 그곳에 가서 일박하게 될 것인데, 마침 같은 층에 세든 M씨가 크리스마스 휴가로 고향에 가 있을 터인즉, 당신이 잘 응대해 주라는 내용이다. 환경과 홀아비 생활의 잡념 탓인지 묘한 여운이 풍기는 듯하기만 했다.
그날이 왔다. 밤 10시 반쯤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잠을 청하노라고 독한 술을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전에 한 번 본 30세쯤의 여인이다. S양은 우선 옷을 갈아입고 목욕실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이윽고 내 문을 두드린다. 흰 잠옷을 걸치고 문을 빙긋이 열더니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지금 몇 시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미닫이 유리문으로 칸을 막은 바로 내 옆방ㅇ로 들어간다. 침대에 올라 잠자리로 드는 여인의 그림자가 엷은 커틴 위에 비쳐 보인다.
참을 수 없는 중압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그 속에서 절구질을 한다.
‘이 바보야! 이 못난이! 이 머저리!
‘그저 시간을 물었는데?’
‘시간이 문제냐! 술 한 잔 권할 용기도 없나?’
‘불혹이 지난 놈이 이 무슨 망집인가? 초연한 득도지사가 못될 바엔 활달지사라도 돼야 할 게 아닌가!’
12시가 지나자 더 참을 수 없어 코트를 걸치고 거리로 나섰다. 파리도 12시가 넘은 밤거리에는 인적이 드물고 적막하다.
정거장 근처에 밤새도록 문을 닫지 않는 카페까지 비를 맞으며 찾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고?
‘흥, 비 맞은 들개처럼 무슨 냄새를 맡고….’
따스한 것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비오는 밤, 마음의 그리움보다 더 절박한….
서너 테이블에 손님들이 포도주나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구석에 젊은 여인이 혼자 맥주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다. 자주 시선이 그쪽으로 끌릴밖에. 이윽고 여인은 활짝 펴지며 일어선다. 한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와락 달려들어 껴안고 뽀뽀를 한다. 비 맞은 들개에 확 더운 물을 끼얹듯이. 버스 간에서, 횡단로 노상에서, 교정에서, 심지어 어느 학생 식당에서, 식사 중에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는, 그렇게도 우리를 당황케 하던 젊은이들의 뽀뽀 풍경에도 이젠 익숙해진 터이지만, 그날 밤만은 온몸이 화끈 타는 듯하다.
열띠고 긴 뽀뽀다. 역시 양쪽이 모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두 눈을 딱 감고…’ 문득 프루스트의 연애론이 생각났다.
프루스트가 비 맞은 들개 모양의 나를 끌어올려 구해 주었다고나 할까? 본능의 충동은 차차 가라앉고 맑은 정신으로 무엇인가 인간의 조그마한 진실을 생각하게 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프루스트는 사랑을 분석하여, 우선 사랑 이전의 방황하는 ‘욕망’이 어느 대상에 얽히고 고정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즉, 유독 어느 한 대상에 욕망이 정착하게 되는 것은 결코 이성에 의한 ‘선택’이 아니고, 우연한 만남에서 자기 기질이 그 대상에 투사되어 상대방의 우연한 인상에 자기 기질이 맹목적으로 끌려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몰입한 남녀가 뽀뽀할 때에 그 두 눈을 딱 감고, 입은 틀어 막히고, 코는 짓눌린 모습이 바로 그 사람의 맹목성의 절묘한 상징이라고 한다. 의식의 창문인 두 눈을 감아 버린다는 것은 확실히 사고와 판단을 정지한다는 것을 표시한다. 그뿐더러 인간의 육체 중에서 가장 지적이며 정신적인 눈을 감아 버림으로써 잠시 정신 활동을 중단하고, 감각적인 황홀감에 더욱 짙게 집중적으로 음미하려는 본능적인 자세이기도 하리라. 나는 미몽에서 깨어난 듯이 벌떡 일어나 다시 찬비를 맞으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새벽 2시, 술은 깨고 방안은 썰렁했다. 자리에 눕고 집어치웠던 프루스트를 다시 펴들었다.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친구들끼리 잡담 끝에 그 이야기를 털어 놓았더니, 뜻밖에도 눈을 감지 않는 여인이 있더라는 친구가 두 명이니 있었다. 이 예외적인 두 경우를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다음 세 가지 공통점이 드러났다.
첫째, 둘이 다 상대가 처녀(적어도 미혼녀)였다.
둘째, 은밀한 장소에서 뽀뽀에 응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셋째, 그러나 그 이상 깊은 관계없이 끝났다. 결국 예외가 아니고 프루스트의 말이 옳다는 증거다. 눈을 뜨고 있었다는 것은 사고 판단을 정지하지 않고, 그 이상의 사랑도취에 몰입하지 않겠다, 그 한계의 선을 넘지 않겠다는 결의와 경각심이 무의식중에 그런 표정을 짓게 한 것이리라. 그러나 눈은 감아야 한다. 그럴 바에야 무엇 때문에… 메마르고 가난한 우리네 범속들에게 불가항력의 시간의 흐름이 홀연히 멎고 한순간에 ‘영원’이 응결되는 그 희한한 천혜의 은총으로, 완전무결한 교감 속에 서로서로 천사가 돨 수 있는 유일한 기회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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